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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ming/하루 일기

30대 비전공자에서 해외 개발자가 되기까지 - 인트로 (1)

by peter paak 202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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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4일, 베를린에서

지난 5년을 돌아보며, 이 글을 남긴다

 

비전공자였던 나는 30살에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사실, 개발자가 되기 전까지 다양한 직업들을 고민해왔었다

 

공무원 - 7급 소방간부

2011년 의경 복무를 마치고, 7급 소방간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대학교 2학년이였던 나는 딱히 직업관이 없었고,

단순히 돈 많이 받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 친구분께서는 소방간부로 정년 퇴직을 하고

많은 연금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지낸다는 소식과

의경 복무 중, 나와 나이가 별로 차이나지 않는 경찰 간부들의 봉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년이라는 기간동안 휴학을 하고 소방간부 공부를 했지만

안타깝게 10여점 차이로 불합격하게 되었다

 

복학

학교를 복학 후, 학교생활을 즐기면서(?) 공무원 준비를 하기로 했다

10점이면 1년만 더 공부하면 붙을 줄 알았던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4학년까지 대학교 홍보대사, 기숙사 임원, 해외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데 힘을 쏟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학점은 3점 중반대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당연한 결과로 4학년때까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고,

남들은 다들 취업하는 것을 보며 마음만 조급해졌다

 

그리고 결국 다른 진로를 찾아보게 되었고,

공무원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채, 결국 공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공무원의 안정된 직장과 높은 봉급,

두마리 토끼를 다잡는 나름 괜찮은 결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돌아가지 았았다

 

공기업 인턴 - 발전소

1년 동안 2개의 기사 자격증컴활 1급을 땄고,

플랜트 교육을 들으면서 한전에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 따놓은 컴활 1급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4학년 마지막 학기에는 동서발전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기대했던 발전소 생활은 경찰 공무원 못지않게 반복되는 업무의 연속이였다

매일, 매달, 매분기, 매년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었고,

시골에서 퇴직할 때까지 반복된 삶을 살아야 될 것만 같았다.

물론 취업된 것도 아니였고, 인턴이였기에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경험해보기에 적어도 공무원, 공기업이라는 인상은 나에게는 그러했다

 

인턴을 마치고, 무슨 일을 해야하나 또 다시 고민 하게되었다.

그래도 나는 적어도 반복되고 안정된 일보다는,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무원 대신 조금 더 큰 무대에서 서고 싶었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는 사실과

어렸을 때 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던게 한몫했던 것 같다

 

영어를 그렇게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실제 업무를 영어로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막막했고,

이러한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에서 인턴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미국 인턴 - 데이터 분석

4학년을 마치고 1년 졸업유예를 했다

 

그 기간 동안 WEST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WEST는 소득분위에 따라 장학금을 받으면서, 미국에서 어학연수 및 인턴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말 원하던 프로그램이었고, 뒤도 생각하지 않고 지원했다.

이력서를 작성하고, 나의 인턴경험과 해외 경험을 최대한 녹이려 노력했었다

 

그리고 몇주 뒤 합격소식을 받았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미국 인턴이 시작되었다.

 

2016년 3월에 샌프란시스코 환경청에서 데이터 분석 인턴으로 시작했다

전공이 환경과 연관이 있었고, 컴활 1급이 있다는 이유로 데이터 분석 인턴이 되었다.

당시에는 엑셀로 모든 데이터처리를 했기에 엑셀 함수를 잘 사용하는 사람을 원했다

 

지금이야 데이터 분석이 인기가 많고 유명하지만,

2016년 당시는 데이터 분석이 미국에서 떠오르는 시기였고

나의 업무는 엑셀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역할이였다.

당연한 이야기로 당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지금 기준으로서는 데이터 분석이라고도 할 수 없는 포지션이였다.

 

회사는 샌프란시스코 bay area의 유명한 market street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해당 거리에는 트위터, 우버 등 당시 정말 잘나가는 스타트업들이 즐비한 거리였다.

 

특히, 우리 회사는 우버 본사와 같은 건물을 썼는데

입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우버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우리 회사였다.

 

그래서 종종 우버 개발자들과 종종 마주치는 일들이 있었다.

 

어느 날은 우버 데이터 분석가가 회사 새미나에 참석하게 되었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새미나가 끝나고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손으로 하나하나 엑셀을 정리하는 나를 딱하게 여겼는지 한마디 넌지시 해주었었다.

 

"프로그램으로 자동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무슨 말인지 당최 몰랐기에 연신 그게 뭔지, 어떻게 쓰는지 물음표 살인을 하기 시작했고,

결론은 파이썬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느려터진 노트북으로 numpy나 pandas를 연신 건드렸었는데,

당시 집값이 비싼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남으려고

평일은 인턴, 주말에는 알바를 해야 했었고

어느새 인턴이 끝나린 나에게 프로그래밍으로는 문제를 해결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는 처음 프로그래밍을 학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때 좀 더 열심히해서 데이터 분석가로 취업을 했다면... 하는 생각이 꿈에 한번씩 나온다)

 

세계여행

 

인턴을 마치고 약 1년간 세계여행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을 한다면, 이런 장기 여행은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무작정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고,

미국, 유럽, 아프리카, 남미를 거쳐 총 28개국을 약 1년 동안 여행했다.

 

여행을 유지할 비용을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사진을 팔았고

카우치 서핑, 워커웨이를 하면서 여행을 지속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여행 중에 기금 모금도 했었다

예전에 캄보디아로 해외봉사 갔을 때 만난 친구의 학비를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였는데

목표액에 한참 모자랐지만, 순수만 마음만으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궁금하다면 해당 링크를 참고)

 

국비교육

하지만 여행 이후, 귀국한 한국은 굉장히 차가웠다

 

귀국 이후, 전기기사, 산업안전기사 2개를 취득하여

총 4개의 기사와 국내 인턴, 미국 인턴 경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의 기회가 좀 처럼 주어지지 않았고

서울로 올라와 신림동 반지하에서 취업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간지 한달만에 여자친구가 생겼다.

캔터키에서 온 4살 차이나는 백인 여자 아이였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했었고, 나도 미국에서 생활했었기에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1년이 넘는 기간동안 같이 지내면서, 이 친구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미국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취업하는 길은 대략 3가지 밖에 없었다

 

한인식당, 공사장, 개발자

 

당연하게도 나에게는 개발자라는 옵션이 유일했고,

미국에서 데이터 분석 인턴이라는 경험도 있었기에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취업준비를 포기하고,

30살에 한달에 36만원씩 주는 국비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 30대 비전공자에서 해외 개발자가 되기까지 - 국비교육 (2)

- 30대 비전공자에서 해외 개발자가 되기까지 - SI 회사 (3)

- 30대 비전공자에서 해외 개발자가 되기까지 - 스타트업 (4)

- 30대 비전공자에서 해외 개발자가 되기까지 - 유니콘 (5)

- 30대 비전공자에서 해외 개발자가 되기까지 - 독일 회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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