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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ming/하루 일기

30대 비전공자에서 해외 개발자가 되기까지 - 스타트업 (4)

by peter paak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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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번째 스타트업 회사는 시리즈 A를 투자받은 AI기반 스타트업이였다.

 

이제 스타트업

네이버에 투자받은 양재의 작은 회사였지만

이미 매달 몇천만원의 수익을 내고 있었고, 중국 시장으로 진출을 도모하고 있었다.

 

대표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삼성SDS를 퇴사하면서 회사를 설립했고

핵심 인력들도 삼성SDS를 퇴사하고 합류한 회사였다.

작은 회사였지만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다

 

자체 서비스를 가진 회사는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았다

- 서비스의 복잡도가 높아질 수록 안정적인 리팩토링을 위해 테스트를 작성하고

- 배포를 자주할 수 있도록 CI/CD를 구축해야 했다

- 회사가 좋은 인재를 원할 수록, 그들이 성장할도록 돕는 역할도 해야 했다.

 

테스트 코드 

회사에서 내가 가장 처음 한 일은 테스트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 서비스를 하기 위해 코드의 상당량을 수정해야 했고

처음 입사한 나에게 실제 운영중인 복잡도가 높은 레거시 코드를 건드는 것은 정말 불안한 일이였다

다행히 당시 NextStep에서 TDD강의ATDD 강의를 들었었고

회사에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나름 레거시가 가진 문제점이 뭔지 분석해보았다

- PubSub 패턴과 인터페이스를 잘 사용하여, decoupling이 잘 되어 있었다

- 대부분의 비즈니스 로직이 서비스 레이어에 있었고

- 객체의 역할도 잘 분리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감탄을 하면서 본 코드들도 많았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는데

- 만능 의존(?) 객체가 여기저기에 순환참조를 만들었고

- 필드 인젝션으로 단위 테스트가 어려운 코드들이 많았다

- 서비스 레이어의 비즈니스 로직을 도메인 객체로 옮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당 내용들을 바탕으로 사내 새미나를 열었다

 

레거시의 문제, 테스트의 필요성, 테스트를 작성 방법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기존 구성원들이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고, 다행히 긍정적으로 봐주었다

 

팀원들을 위해 테스트 작성 가이드를 작성해서 배포하고,

팀원들이 기존 코드는 단위 테스트로 작성하고

새로운 피쳐는 TDD로 개발하는 방향으로 개발도록 도왔다

 

이때가 개발자로서 많이 성장하고 방향성을 어느정도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 테스트 덕분에 코드를 수정하면서 얻은 안정감

- 나의 설득으로 무언가가 개선되었다는 자신감

- 동료들과 함께 고민을 하면서 코드를 개선하는 과정들이

개발 커리어에 있어서 자신감을 많이 올려주었다

 

이렇게 회사가 계속 순항할 줄 알았다

 

글로벌 회사

회사는 태아 이미지를 예측해주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OECD 국가에서 출산율이 최저(당시 0.8)인 대한민국에서

국내에서만 서비스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싱가폴 아마존 출신이었던 공동 대표

베트남, 싱가폴, 인도 등에서 인력을 뽑으면서 글로벌 회사로 만들기 시작했다

주된 이유는 인건비를 줄이는데 있었지만, 다양성을 높이는데도 큰 의미를 두었다.

 

회사는 일본, 홍콩, 싱가폴, 베트남 등으로 한번에 서비스를 런칭하려고 했었기에

자연스럽게 회사에서는 영어를 사용해야 했었다

 

그런 환경은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로 여겨졌고,

3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해외에서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회사에서는 워케이션을 장려했다.

워케이션은 work + vacation의 합성어로 여행하면서 일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에서는 유일하게 나만 써먹었는데

덕분에 발리에서 총 3개월 정도 머물면서 일할 수 있었다.

 

항상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그 꿈을 크게 만들었었다

 

권고사직

2022년 말,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금리가 올라가고 이런저런 정치적 사건이 터지면서 스타트업이 투자받기가 정말 힘든 상황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AI회사여서 투자 받기가 쉬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많은 회사들이 줄도산 및 권고사직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캐시카우가 있는 우리 회사는 괜찮겠지라고 불안한 안도를 하는 동안

 

회사에서는 권고사직을 권하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회사를 이끌던 공동 대표 중 한분도 회사를 나가게 되면서 

회사 분위기가 정말 어두워졌다

 

개인적으로도 가정사 + 이별 + 건강 이슈로 굉장히 어두운 시간이었는데

이때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불행중 다행으로 나와 마케터만은 회사에 남길 원했다

당시 Lensa라는 디퓨전 모델을 기반으로 수억원의 돈을 쓸어담던 AI아바타 앱이 있었고

이미 이미지 AI 기술을 가지고 있는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패스트 팔로워로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신사업

대표, CTO, 시니어 개발자, 나 그리고 마케터 총 5명으로 정말 초기 스타트업의 마음가짐으로 서비스 개발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극초기 스타트업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었는데

이때 충분히 배울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더이상은 다매)

 

디자이너, PM을 프리랜서로 고용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2개월의 기간동안 앱을 개발하여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시작했다.

 

앱 개발은 백엔드 개발자였던 내가 맡게 되었다

앱 개발을 해본적도 없고, 2개월 동안 개발을 해야된다는 것 자체로도 사실 막막했다

안드로이드나 IOS로 처음부터 배워서 개발하기에 터무니없이 시간이 적었고

플러터를 처음부터 배워서 개발하더라도 2개월은 정말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그러던 와중 PM분께서 플러터플로우라는 노코드 서비스를 제안해주었다.

플러터플로우는 플러터를 UI 기반으로 개발해주는 툴이었는데,

조금 공부해보니 플러터보다 더 빠르게 개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현재 그 PM분은 인프런에서 플러터플로우 강의를 찍는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셨다)

 

결국 2개월 동안 개발을 완료하고 런칭을 할 수 있었다.

잠 안자고 하니까 된다는 걸 느꼈다

(현재는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에만 남아있다)

 

그 당시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는데,

한달동안은 발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그나마 괜찮았다

 

물론 런칭하고 아무 반응이 없었고,

이후 피봇을 한번했지만 그 마저도 반응이 없었다.

피봇한 모델은 이후 스노우에서 개발하여 돈을 쓸어담았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앱을 만들 필요없이, 가설검증이 가능했다 생각한다)

 

퇴사

회심의 서비스가 실패로 돌아가자 회사에 대한 미련이 많이 사라졌다

 

2년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것도 있었고,

내가 성장한다고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만약 사업을 한다면 발생할 실수를 미리 경험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경제적인 안정감을 포함하여 개발자로서 역량을 더 높이고 싶었다 

당시는 빠르게 개발 + 실패하기를 반복하던 터라 개발 실력에 대한 불안감도 많았다

 

이제는 성장하고 있는 + 규모가 있는 스타트업 +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회사를 가고 싶었고,

좋은 동료나 개발 문화, 시스템은 이미 바라지도 않았다.

다행히 어려 좋은 스타트업에서 면접 기회가 생겼었고 이 당시 가장 면접을 많이 봤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던 도중, 현재 회사로 나를 뽑아준 직장 동료가 본인의 회사에 사내추천을 해주셨고, 

그 회사가 4번째 직장인 무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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