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삶을 시작하면서 항상 해보고 싶었던 것이 나의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해보는 것이었다.
이번에 여자친구와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면서 내가 만들었던 여행앱(?)을 급하게 만들어서 이번 여행을 기억하고 싶었다.
수기에 앞서서 지금까지 여행했던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서 후기처럼 남겨보려고 한다
실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내용은 2탄에서 남겨보려고 한다.
궁금하다면 스킵하고 넘어가면 된다.
십여전 이야기라 지금과 많이 다를 수 있으니 추억팔이라 생각하고 그런게 있구나라고만 생각해주세요
1. 여행인생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20대를 돌이켜보면 4대륙 40여 국가 200여 도시를 돌았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RCY 부산지부 선배들과 RCY 상하이 교통대학교 친구들을 보기 위해 간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선배들만 쫄래쫄래 따라갔고,
비행기 티켓부터 호텔예약까지 척척하는 선배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상해 푸동 공항에서 지하철 타고 버스 따라 타고 가는데 어찌나 선배들이 멋있어 보이던지
기억 남는 것은 현지 친구들이 짝퉁마켓 데리고 갔는데 나이키 조던이 고작 10만원 밖에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학생때라 거지였는데 농구화 나이키는 얼마나 사고 싶었던지
친구한테 말해서 계산하는거 도와달라고 하니
그 친구가
"얼마달래?"
라고 묻길래
"5만원"
이라니까 갑자기 화내더니 아줌마 한테 가더라
그러고서는 뭐라뭐라 하더니 나한테 손가락 다섯개를 펴보이는데 속으로
"와 역시 현지애가 깍으면 많이 깍는구나 5만원이라니"
라고 했더니 알고보니 5천원이라고
때가 2008년이었는데 그때부터 대륙의 기운을 느꼈다
나중에 길거리에서 롤렉스 시계를 샀는데 그것도 5천원에 득템ㅎ
(자전거 타다가 갑자기 공중분해되는 건 함정)
거의 십여년전에 마라롱샤 (새우같이 생긴 거) 먹었는데 몇달전에 한참 유행하길래
이제야 한국에 들어왔네? 했다.
지금이야 중국에 갈 생각이 없어서 잘 몰랐을 때 잘 갔네 라고 생각했는데
푸동의 야경, 푸시의 옛 중국의 거리, 북적한 지하철 등
갓 대학 졸업했을 때, 세계에 눈을 뜨게해준 고마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떄부터 아마 외노자의 삶을 알게 모르게 선택한 것이 아닐까
2. 오토바이 전국일주
군대를 다녀오고 오토바이로 처음 전국일주를 했다
06년식 구형 카빙을 처음으로 구매해서 캠퍼스를 누비고 다닐 때였다.
그러던 중 아는 형님이 빅바이크로 전국일주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그 모습에 나도 못할 것 없지라는 생각으로 전국일주를 돌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125cc하나 달랑 들고 갔지 지금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내가 그때 한말중에 실제로 "세계를 돌려면 우리나라를 먼저 마스터 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세계여행까지는 아니였지만 내가 가고자한 나라는 모두 돌았으니 그렇다 친다.
부산에서 시작해서 전라도 서울 강릉 부산 제주로 해서 큼직하게 돌았다.
다행히 여름이라 춥지 않았고 하루도 길어서 그만큼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속도로는 이륜자동차가 갈 수 없기에 일반 국도를 다녔고,
카빙의 최대 속도는 60km 밖에 낼 수 없었기에 쭈구리처럼 마지막 차선에서 쫄쫄쫄 다닐 수 밖에 없었던게 기억난다ㅎㅎ.
그마저도 여름이라 엔진 맛 갈까봐 40에서 50km 유지한다고 일반차들 눈치를 더 봤던 것 같다
기억 남는게 제주도 오토바이로 돌면서 모슬포항 근처에 고등어 횟집이 많았는데
그때 당시 5만원 정도 했었는데 학생때라 돈이없어서 못먹었던게 너무 서러웠더라
그래서 이번에 모슬포항가서 진짜 맛있는집 다 섭렵했다. (미영이네 맛있다)
하지만 고등어회는 시장가서 한마리 만원에 먹는걸 추천한다. 훨씬 싸다.
오토바이 여행하면서 좋은 점은 가고 싶은데 아무데나 갈 수 있다는 건데
제주도 여행하면서 어디 오름으로 가는 도중에 북한군 토굴같은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개인이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토굴이 정말 끝었이 있더라
심지어 얼마나 깊냐면 낭떨어지 같이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는데
이런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것이 신기했다
그중 하나가 전라도 보성 녹차밭으로 가는 도중에 누구의 사찰이 있었는데 그떄는 이거 뭐지 하고 들어갔었다.
붓글씨로 유명하신 분인데 십여년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무튼 그리고 제주도에서 붓글씨로 정말 유명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박물관에 잠깐 들렸다
거기서 설명해주시는 분이 보성에 이분의 제자중에 한분이 있는데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그때는 에이 설마하고 대충 기억이 나서 얘기했는데 맞다는 것이다.
그때 정말 오토바이 여행의 희열을 느꼈었다.
뭔가 역사의 퍼즐을 내 손으로 짜 맞춰가는 느낌이랄까.
그떄부터 여행할 때 대충 역사를 알고 가는 것을 즐긴다.
왜냐면 내가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에
정말 많은 기억이 있지만 다 쓰려면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줄여야겠다
하지만 오토바이여행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일반 국도에서더 차가 많이 다니고 트럭이 주로 마지막 차선으로 다니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한다.
여담이지만 여행다니다가 한번도 사고난 적이 었는데
대학교 기숙사 돌아온 그 다음날 사고가 났다
잠시 기억하고 신경치료도 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절대 자만하면 안된다.
3. 북큐슈 백패킹
이떄 처음으로 혼자서 외국을 혼자 나가봤다.
그떄는 지금처럼 영어를 하지 못했고 (물로 일본사람도 영어 못한다), 외국에 처음 나가보는 거라 준비를 엄청 열심히 했다
예산도 총 35만원으로 5일을 다녀왔는데 당시 부산여객터미널에서 왕복 패리를 8천원인가? 엄청 싸게 하고 북큐슈레일패스를 10만원에,
숙소를 하루당 3만원으로 잡아서 15만원, 나머지는 전부 먹는 걸로 해서 거지같은(?) 여행을 했다.
당시에는 나가는거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새로운 것을 하는 것에 대한 설레임이 너무 컸다.
처음 항구에서 내렸을 때, 그때는 길눈이 어두울 때라 할아버지한테 지금까지 연습했던 일본어를 처음 써봤다.
"아노... 하카타 에키와 도코니 아리마스까?"
대충 하카타 역이 어디 있나요이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는거 아닌가
너무 허리를 숙이시길래 내가 더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알아 들을 수는 없었는데 대충 손가락 가리키는 것으로 찾을 수 있었다 한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 가이드를 해준 네덜란드 대학생이다.
게스트하우스를 갔는데 외국인 여자 두명이 대한민국 사이트에서 한국가려고 예매를 하는거 아닌가?
지금은 괜찮아 졌지만 그 당시에는 영어 서비스가 허접해서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컸었다.
하지만 역시 영어가 부족해서 많이 손짓 발짓 해가면서 도와주는 현실이 참...ㅠㅠ
여차저차해서 큐슈에서 인천가는 표를 끊어주니 여자애가 고맙다고 나중에 평화공원가는데 가이드 해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때 처음 외국인과 뭔가 교감을 하는 첫 경험이 었다.
사실 영어는 못하는데 자신감만 있었고 이것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평화공원은 셰게 2차대전 때 미국이 히로시마와 같이 나가사키에 원폭을 떨어뜨린 장소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기념해 놓은 것이다.
여자아이는 나가사키에서 교환하는 학생인데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곳을 많이 들렀다고 한다.
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기억남는 것이 나한테 꿈이 뭐냐고 물었었다.
당시에는 소방간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걸 영어로 설명하는것이 너무 힘들었다.
나름 영어회화 공부를 많이 한다고 했었는데 그걸 설명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내가 느껴졌었고
그걸 바라보는 친구의 시선도 느껴졌는데 20년 넘게 영어를 공부하면서 이런거 하나 설명못하는 내가 참 한심했었다
(후에 여기서 영어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
평화공원에서 인상적이었던 적은 박물관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관광객들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직도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쉽긴하다.
그리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모르고 부딪혔는데 스미마셍을 거의 20번 연달아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살짝만 스쳐도 스미마셍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한국와서도...)
당시 라면 투어가 컨셉이었는데 제일 맛있었던 라면은 쿠마모토에서 줄서 기다리던 라멘이다.
뭔가 국물이 짜지도 않으면서 구수했는데 고기가 정말 양이 많았다.
큐슈의 라면은 대체로 짠 편이었고 나가사키는 짬뽕을 먹으러 갔었는데 흔히 편의점에서 먹는 나가사키 짬뽕을 생각하면서
칼칼하고 매콤한 맛을 기대했는데 사실상은 고기해물탕?에 가까운 맛이었다. 고기육수 베이스에 해산물을 넣어서
구수하게 만들어 주는 짬뽕이었는데, 그거 먹고 한국에서 절대 나가사기 짬뽕 먹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지금도 나가사끼 짬뽕 제대로 하는데는 보지 못한것 같다 (사실 잘 찾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억남는 것은 당시 슬램덩크 덕후라 일본 고교 농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실제 슬램덩크의 배경지(철도길과 바다가 있는 곳)은 갈 수 없었는데,
우연히 쿠마모토에서 지나가다가나 언듯 비슷한 곳이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도둑놈 마냥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갑자기 교무실?같은 곳에서 선생같이 생긴 사람이
나한테 오더니 뭐때매 왔는지 물었다.
영어로 묻길래 깜짝 놀랐는데 이때 느낀게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영어 쓰면 그 특유의 리액션이 나온다
(아.. 오!!! 등등의 ㅎㅎ) 그래서 둘 다 허접한 영어로 고교생들 농구하는거 보러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학교 투어를 시켜주는게 아닌가
뭔가 그때 둘 다 "영어를 쓸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영어로 대화하는 내가 자랑스럽구나"하는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뭔가 매우 웃겼다ㅋㅋㅋ 마지막에는 농구인의 뜨거운 포옹으로 마무리하면 다음에 꼭 보자 약속했다
십여년전 당시에는 지금처럼 반일 반한 감정이 없었고 한국이 관광객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음식도 꽤나 맛있어서 좋은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몇년전에 여자친구와 큐슈로 여행을 갔었는데 지금은 당시처럼 그런 느낌은 나지 않았다.
역시 여행은 돈많고 배부르면 재미가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4. 필리핀 어학연수
필리핀 어학연수는 세부 지역의 지금은 없어진 MDN 어학원으로 다녀왔다.
당시 마음은 영어를 2개월동안 마스터(?!)하고 영원히 영어와 안녕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갔다(응, 아니야)
당시 소개받을 때는 한국인 50%에 다른 국가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등)이 나머지를 차지할 것이라 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언어를 배울 때, 한국인을 안만나는 것이 제일 좋다. 한국인이 한명만 있어도 그 사람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느 어학원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사실 한국인이 80퍼센트는 넘게 차지한다.
내가 갔던 곳도 일본인이 5명 대만인 1명 그외 나머지 전부 한국인이었고 스텝도 한국인이었다.
그래도 영어를 배우러 간 곳이니 한국인 룸메이트 빼고 나머지 한국인들과 대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하루의 스케쥴을 6시에 일어나서 쉐도잉을 하고 9시부터 5시까지 계속 방을 돌면서 수업을 듣는다.
phonics 같은 책으로 보통 지문을 읽어보고 잠깐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이 시간에 전날 쉐도잉 했던 내용을 써보려고 노력하거나 최대한 책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5시 이후에 밥을 먹고 골방에 갇혀서 혼자서 미드 틀어놓고 거의 12시 새벽한시까지 미친듯이 따라했다.
그렇게 해도 대사 10줄을 넘어가지 못했다.
최대한 완벽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녹음을 해놓고 따라하는데 대사가 길거나 발음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으면 그걸로 한시간 넘게 하기도 했다.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건 한국에서도 할 수 있잖아? 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이는 미국에서도 똑같이 반복하게 된다ㅎㅎ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주말에는 보통 한국인들끼리 막탄에 나가서 호핑 투어를 하거나 아얄라 몰 같은 곳에서 쇼핑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잘했던 것이 있는데 남들 여행가는데 끼어서 잘간다.
여러명이서 여행을 가면 대체로 저렴한 가격에 여행을 즐길 수 있는데 그래서 세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 다했던 것 같다.
호핑 투어도 일인당 2만원 정도 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개인적으로 가본 곳 중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반타얀이라는 세부 북부의 자그마한 섬이다.
버스로 2시간 배로 한시간 가면 갈 수 있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세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남쪽과 동쪽은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과 해변을 따라 호텔이 줄지어져있고 두개의 버진 아일랜드가 자리잡고 있다.
버진 아일랜드는 해변가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분에게 오천원 정도 지불하면 배로 태워다 주신다.
서쪽은 수산물 시장이 있는데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랍스타와 킹크랩을 맛볼 수 있다.
당시 엄청 많은 양을 먹었는데 일인당 만원정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섬 내부에서는 오토바이를 빌릴 수 있는데 그걸로 섬 전체를 돌 정도로 작은 섬이다.
세부에서 막탄이 지겹다면 개인적으로는 팔라완 다음으로 예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필리핀에서는 2개월 이라는 시간동안에 영어를 엄청 늘리려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는 못했다.
첫째로는 영어는 본인이 얼만큼 하냐에 따르는데 개인적으로 쉐도잉을 한국에서 엄청 많이하고 여기서는 그냥 쉐도잉 대신 같은 방에 지내는 티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다.
두번째는 미국에 가서 느낀 것이지만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워도 소용이 없다. 왜냐면 미국에 가면 하나도 안들린다. 즉, 필리핀 악센트가 남아있는데 그게 미국이나 영국과 많이 달라서 알아 듣지 못한다. 고로 말하지 못한다 (말할 수 있지만 2개월 영어한걸로 소통하기 조금 힘들다)
만약에 누가 호주나 미국 가기전에 필리핀에서 영어공부하고 가겠다는 사람은 그냥 말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그 돈으로 필리핀 여행을 가고 남은 돈으로 호주, 미국에서 현지사람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가지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번에 여자친구와 세부를 가려고 했지만 출국 5일전에 코로나가 엄청 크게 터져서 환불 및 취소 처리했다 (부들부들...)
꼭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때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5. 캄보디아 봉사활동
6. 미국 인턴십
7. 6개월간 세계여행
이야기를 쓰다보니 옛날 생각이 너무 나서 계속 글이 길어진다
서비스 어떻게 운영했는지 적어야 되는데 추억팔이 감성팔이 하니까 도저히 맥주없이 쓸수가 없다
다음에 나머지 여행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서비스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